가벼운 카메라 이야기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화된지 약 15년의 세월이 지났다.
임의로(내 맘대로) 보급형 디지털 카메라(포서드 이상규격의 렌즈교환식)의 세대를 구분해 본다면
이전 카메라의 필름에 해당하는 촬상소자(CCD, CMOS, etc)의 화소수로 간단히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약 15년전의 300만화소급
약 10년전의 600만화소급
약 5년전의 1,000만화소급
현재의 1,600만 화소급으로 분류할 수 있겠다.
디지털카메라의 발전은 135즉 소형포맷을 기반으로 만들어져 왔으며 그 형태 역시 과거의 소형 필름카메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캐논 니콘등은 호환성 등의 이유로 필름면을 촬상소자로 대체하는 방식의 제품개발을 하였다.
물론 목표는 135포맷의 필름(36mm x 24mm)과 동일한 크기의 촬상소자를 탑재하는 것이었으나 보급형 카메라에 탑재하기에는 가격이 너무 높았다.
기존의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디지털화할 수 있는 대안으로 찾은 것이 좀 작은 크기의 촬상소자를 탑재하는 방법이었다.
APS 라고 하는 규격의 필름크기에 해당하는 촬상소자를 넣기로 한 것이다.
촬상소자가 작아지면서 이미지는 크롭이 되고 그 결과 기존의 렌즈가 좀더 망원렌즈가 되어버린다는 단점이 있기는 했지만, 디지털이라는 이점은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그럼에도, 소위 이른바 사진을 취미로 한다는 사람들에게 풀프레임의 대한 향수는 결코 지울 수 없는 상실감의 반증이었다.
그것이 그리도 지독했던 이유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135포맷, SLR 이라고 하는 아주 익숙한 시스템속에 갖혀있기 때문이었다.
이때, 디지털의 세계에서는 아예 판을 다시 짜야한다는 생각을 실행에 옮긴 회사가 있었으니, 바로 올림푸스(Olympus)였다. 2003년도에 올림푸스는 코닥과 함께 포서드라는 규격을 만들고 E-1 이라는 카메라를 출시한다.
이것이 특별했던 이유는 렌즈를 새롭게 디지털 촬상소자에 최적화해서 만들었다(수직입사 시스템)는 점이다. 게다가 렌즈와 바디 모두가 방진 방습 기능을 탑재하고 있었다. 당시 기준으로는 크기도 상당히 작은 편이었다.
예를 들면 망원렌즈인 50-200 F2.8-3.5 렌즈는 135 포맷으로 환산하면 100-400mm 의 초점거리를 갖는 렌즈인데, 그정도의 밝기를 유지하는 135포맷 400mm 렌즈는 대략 바이올린가방정도의 크기로 보면 되겠다.
올림푸스 E-1 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어도 사막에서 사진가가 모래바람 맞으면서 사진찍는 CF는 모두 기억할 것이다.
근데 중요한 것은 이 CF가 뻥이 아니라 진짜라는 점이다. E-1 과 함께 사막, 히말라야, 오지 섬탐험 등을 해본 필자가 보증한다. 이런 방진 방습 카메라 시스템 좀 다시 나왔으면 좋겠다.
그러나, 올림푸스는 내림푸스라는 별명(중고가격이 끊임없이 내려간다는 의미의)을 얻으며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데... 그 이유는
1. 프레스(일반보도사진 시장)의 외면,
; 보도사진의 생명은 연사였으나, E-1 의 연사성능은 좀 형편없었다. 캐논 니콘에 비해 나을 것이 없는 데 굳이 기자들이 바꿀 이유가 없지 아니한가?
2. 아마추어 사진가의 외면
; 당시에는 피사체의 배경을 최대한 흐리게 (피사계 심도가 얕을 수록 좋다는 식의...) 뭉게는 사진이 아마추어 사진가들에게 최고의 인기였다. 135판 렌즈에 비해 초점거리가 짧을 수밖에 없는 (초점거리가 잛을수록 피사계 심도는 깊어진다. 배경까지 선명하다는 이야기) 포서드 규격의 카메라등은 배경도 흐리게 하지 못하는 몹쓸 사진기로 간주되곤 했다.
다큐멘터리 사진과 여행사진을 좋아하던 나에게는 더없이 훌륭했던 E-1, 약 5년전 이천의 한 스파랜드에서 십여분간 잠수를 시키는 (카메라를 메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체, 풀속에서 딸들과 신나게 놀았다는...) 참사로 명을 달리할 때까지 4년의 시간을 함께 보냈던 좋은 카메라였다. 개인적으로는 아직까지도 그만큼 만족감을 주었던 카메라는 없는 것 같다.
잠시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었다.
여튼 그 이후,
천만화소급의 카메라가 보급화면서 디지털 바디의 해상도나 관용도는 135판 필름의 그것을 가뿐히 능가하는 수준에 도달하였다.
또한 Live-CMOS 의 도입으로 인해, 촬영한 직후에 바로 확인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진보한 형태 즉, 아예 결과물에 가까운 화면을 보면서 촬영할 수 있는 매우 획기적이고 편리한 기능까지 탑재하기에 이른다.
소형카메라가 지녀야할 기대성능치에 충분히 넘어선 이 때부터 카메라 업체들은 '경량화' 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제품 개발을 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가볍고 편리하며 성능이 좋아야 한다는 휴대용 전자기기의 덕목과 맥을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2009년 파나소닉과 올림푸스가 마이크로 포서드(micro 3/4)라는 포맷을 발표하면서 흔히 이른바 '미러리스' 라고 하는 형태의 카메라가 나오기 시작한다.
왼쪽부터 올림푸스 E-P1/ 파나소닉 GF1/ GH1
(GH1의 장점은 전자식 뷰파인더가 내장되어 있다는 것과 후면의 LCD를 거의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이다. 덕분에 앞의 두 카메라보다 조금 더 크고 조금 더 무겁다.)
흔히 말하는 똑딱이 카메라정도의 크기에 우월한 화질을 보장하는 카메라가 등장한 것이다.
기존의 일안반사식(SLR) 카메라들은 렌즈로부터 들어오는 상을 거울로 반사하여 뷰파인더로 보여주어야 했고, 그 거울이 꽤 많은 부피를 차지했기 때문에 당연히 부피가 클 수밖에 없었다. 또한 렌즈와 촬상면의 거리가 멀어지기 때문에 렌즈 설계에서도 그것을 고려해야했고, 그것으로 인하여 감수해야할 부분들이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앞에서 이야기한 Live-CMOS 의 도입으로, 상을 거울로 반사해서 파인더로 보여주는 시스템은 필수적이지 않은 것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바디를 더욱 경량화할 수 있었으며 촬상면과 렌즈간의 거리를 더욱 가깝게 하여 우수한 화질의 렌즈를 경량화하여 제작할 수 있었다. 즉 이전과는 다른(이 말은 이전과 호환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새로운 시스템이 출현한 것이다. 포서드와 달리 마이크로 포서드 군단은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소니, 캐논, 니콘 들이 덩달아 '미러리스' 형태의 카메라를 개발하기에 이른다.
사실 이러한 변화는 전혀 새로운 것이라기 보다는 과거로의 회귀로 볼 수도 있다.
애초에 소형 135판 카메라의 출현 자체가 더 작고 편리한 카메라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초기 135판 소형 카메라에서 가장 완성도가 뛰어났다고 볼 수 있는 거리계 연동식의 Leica M3,
당시 캐논과 니콘은 그리 큰 회사가 아니었다. Zeiss ikon 과 Leica 카메라를 최대한 모방해서 거리계 연동식 카메라를 만들고 발표하였지만 제작 단가가 너무 비쌌고, 후발주자로서 가격 경쟁을 하기에는 적절한 수익 모델이 될 수 없었다. (간단하게 예를 들면 니콘이 심혈을 기울여 고증 제작을 했던 거리계 연동식의 nikon SP 라는 카메라는 2005년 출시가가 한화로 약 800만원선) 니콘과 캐논은 현명했으며 일안반사식 카메라 시장에 주력하여 대성공을 거둔다.
거리계 연동식(RF)과 일안 반사식(SLR)을 간단하게 구분한다면,
RF:난 작고 경쾌하지만 보이는대로 찍히지는 않아.
SLR:난 큼직하지만 보이는대로 찍을 수 있지.
(좌)레인지파인더 방식:구조상 시차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우)일안반사식:펜타플즘과 미러덕에 통통하지만 시차가 존재하지 않는다. 전문가의 영역에서 보이는 대로 찍힌다는 것은 참 중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세상이 변했고, 기술은 발전했으며, 카메라는 50년전처럼 비싸지 않다.
Live-CMOS 의 등장, 미러리스 카메라의 등장으로 사진기는 더 작아지고 보이는 대로 찍을 수 있게된 것이다. 게다가 제작 단가 또한 업체들의 입장에서는 매우 저렴해졌다.
영역과 필요도에 따라서는 수요의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미러리스는 참으로 매력적인 시스템이다.
그것은 작고, 가볍고, 편리하다.
사진이 좋은 취미인 것은 우리의 삶에 쉽게 들어올 수 있고, 우리 삶을 흥미있게 반영하고 투사하기 때문이다.
가방안에 카메라 한대만 있으면 사진이란 취미의 준비는 완료된 셈이니까,
삶에 최대한 가까이 붙어 있어야 한다면, 당연히 작고 가볍고 편리해야한다.
저렇게 작은 걸로 사진이 잘 찍히려나? 사진을 한다면 이정도 탄탄한 건 써야지 등의 조롱이 있을 수도 있다.
펩시콜라가 코카콜라를 이길 수 없듯이 익숙한 것에 대한 사람들의 기호는 당연한 것이다.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게 필요한 것, 내가 표현하기 좋은 것을 쓰면 된다.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이 현재 살고 있다면 그는 과연 어떤 카메라를 택했을까?
그가 Leica M3 를 사용했던 이유는,
그 당시 M3가 작고 가볍고 편리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삼성까지 렌즈 교환형 미러리스 카메라를 출시한 지금, 과연 어느 브랜드의 어느 제품을 써야 할까?
정답은 없다.
다만 내 견해를 덧붙인다면,
전자식 뷰파인더가 내장된 모델이 사용하기 편리하다는 것 정도... (반사광때문에 LCD가 잘 안보이는 경우에 매우 유용, 그리고 눈에 붙여서 찍는게 너무 익숙하여... 에, 또 전자식 뷰파인더 생각보다 좋습니다. 1인치도 안되는 파인더에 130만 화소 이상의 집적도...)
'센서의 크기가 너무 작은 것 아닐까?'
기술이, 기술이 너무 발전해서 센서크기에 따른 치명적 차이는 절대절대 없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2천만 3천만 화소 넘는 것들도 많은데, 화소가 너무 작은 거 아닐까?'
대체 얼마나 크게 출력하려고 합니까? 500백만 화소의 E-1 으로도 11"x14" 출력이 매우 훌륭했습니다. 천만화소급이면 충분 또 충분합니다.
필자는 현재
Panasonic GH1 2대
RICOH 의 초경량 디지털카메라 GR
Leica M3, M7 를 사용중이다.
작고 가볍고 편한거 타령하면서 M은 왜 쓰냐고?
우습지만 지금은 상대적으로 크고 무겁고 불편해진 M 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사용한다.
거기에 흑백 필름 사진에서 보이는 특유의 입자감이 좋기 때문이라는 것을 구차하게 덧붙여 본다.
클래식 카메라에 대한 관심과 기계식 카메라를 만지는 즐거움, 설레이는 현상과정, 그 정도랄까?
8년전 떠났던 인도여행을 내일 다시 떠날 수 있다면,
나는 주저없이 GH1과 GR만 들고 떠날 것이다.
짐이 많을 수록 여행의 재미는 반감되기 때문이다.
Pokhara, Nepal/ Olympus E-1
Pewa Tal, Nepal/ Olympus E-1
나주 영산강의 봄/ Panasonic GH1
2012년, 세살과 다섯살/ Panasonic GH1
사진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결혼, 육아와 함께 피사체는 급변하기 마련이다.
요약 : 가벼운 것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135판이라는 시스템의 굴레에서 벗어나라!
촬상소자의 크기, 렌즈후면과의 거리, 렌즈설계 모든 것을 새로 써낸 것이 바로 미러리스.
새로운 시스템은 새로운 시스템일뿐, 과거의 그것과 굳이 비교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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