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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must imagine Sisyphus happy.

'마엄'

  • 2012.01.27 23:00
  • day by day
글 작성자: quanj


첫째에게 글씨 쓰는 것을 가르친다.
어떤 아이들은 이른 시기에 한글을 깨우친다고 하지마는 우리 아해는 그렇게 빠르지는 못한 편이다.
그래도 알려주는 글자를 곧잘 따라쓰곤 한다.
오늘은 첫째가 갑자기,
"아빠, 이번에는 내가 쓴 것을 아빠가 따라써 봐"
첫째가 쓴 글자는 '마엄' 이었다.
'마엄' 이라고 쓰고 '엄마' 라고 읽었다.
나는 첫째를 설득하여 비교적 어려운 낱말인 '다람쥐' 를 쓰게 한 뒤, 약속대로 
내가 직접 '마엄' 을 쓰기로 했다.
'마엄' 이라고 썼지만, 첫째는 나에게 '엄마' 라고 쓰라고 했다.
나는 아무런 생각없이 볼펜을 그어나가기 시작했다.
한번 쓰고, 두 번을 쓰고, 세번 남짓을 썼을 때,
낯설은 그리움을 느꼈다.
이 두 글자의 쉽디 쉬운 단어는 내 손으로도, 내 입으로도 지난 이십년동안 써보지 못했던 아니 하지 않았던 말이다.

속이 빈 놋쇠 사발을 두드린 것마냥
그 둔탁한 울음이 한동안 계속 이어졌다.
첫째가 "아빠, 빨리 쓰세요" 라는 말로 나를 잡아 주기 전까지는 말이다.
첫째의 말대로 나는 빠르게 획을 하나하나 그어나갔다.
목마름은 글씨 뒤에 남겨 놓았다.
언젠가는 그 갈증을 풀 날이 있기를 기약하면서, 
마른 목에 지금 물을 축이지는 않았다.

'마엄',
아직 나에게는 뜻조차 없는 음절의 조합이 '엄마' 라는 말보다 더 편하다.
'마엄,
나에겐 막연한 희망과도 같은 울림이었다.
'마엄',
물려주고 싶지 않은 슬픔이라면, 그 의지만큼이나 큰 슬픔을 오로지 내 홀 품안에서 녹여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잊었던 울음을 며칠동안만 다시 꺼내보기로 한다. 손수건이 마를 때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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