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못하는 말, 2018
말하지 못하는 말, 2018
사진집단 일우 단체전
전시장소 : 혜화아트센터
전시기간 : 2018/11/02 ~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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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트 :
낮잠(午睡)
그렇게 잠시 꿈을 꾸었다.
내가 바라던 나를 훔쳤다가, 훔쳐보았다
미련을 품고 미련하게 살아가는 군상도 바라보았다.
악착같이 돌을 밀어올리는 시지프스도 비취보았다.
나른함 때문인지 비련함 때문인지 모를 땀이 눈을 간지럽히더라.
그렇게 다시 꿈에서 깨었다.
김범준의 사진 오수는 능청맞은 오만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의 사진은 세련되고 카메라 워크는 나비처럼 가볍다. 아무렇지도 않게 상대를 화면 속으로 불러 들이고 또는 화면 밖으로 밀어낸다. 슬쩍슬쩍 사진을 찍다가 마치 시쳇말로 한 두 장 건진 것 같지만 계산이 빠르고 치밀함 속에서 얻어지는 스냅 사진이다. 그렇다고 내용이 부실? 전혀 그렇지 않다.
그는 현대인의 삶을 조롱하거나 부정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조용히 관조 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장소를 헌팅하고 카메라를 들이댄 후 슈팅을 한다. 하지만 거기에는 마치 셋팅장 같은 공간 안에서 초대받지 않은 인물들이 한국의 21세기 초를 연기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김범준의 촬영법이고 그의 무연출의 연출법이다.
겸손하게 카메라를 들이 대는 그의 뒷모습에서 지금을 연출하는 능청맞은 오만을 느끼는 것은 다 이런 이유 때문인 것이다.
<사진가_김홍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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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장과 공만 있다면, 남자 아이들이라면 모두 해보았을 축구를 고2때 처음 해보았다.
뭐가 그렇게 즐거웠는지, 수업시간 사이 사이에 있던 10분의 틈까지 공을 갖고 뛰어 나가 공을 차곤 했다.
레알마드리드의 수케르는 나의 영웅이었고, 열심히 공을 차다보면 언젠가 수케르는 아니더라도 국내의 이름없는 리거 수준정도만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붐비던 큰 운동장을 피해, 핸드볼 골대를 이용해 공을 차기 시작했다. 마음껏 놀기는 했지만 결코 기량이 좋은 선수는 될 수 없었다. 쉽게 포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수능을 보고, 졸업을 했다. 시간은 그렇게 잘 흘러갔다.
영화를 좋아했었다. 그렇다고 깊이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기괴한 상상력으로 주목을 받았던 '데이비드 린치' 는 다른 영화를 많이 보는 것이 외려 창작을 망친다고 했었다. 이런 엉뚱한 이야기들은 언제나 솔깃하다. 대학에 들어가서 단편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만들다가 좀 더 함축적인 장면을 만들고 싶어서 사진을 처음 시작하게 되었다. 영상에 비해 에너지가 적게 들고 간결했던 사진은 참 매력적인 분야였다. 그 이후 사진은 내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사진찍으러 방문했던 인도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사진을 업으로 삼겠다는 생각은 해 본적이 없다. 그럴 역량도, 용기도 내겐 없었다. 시간은 그렇게 잘 흘러갔다.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 나는 축구는 하지 않고 있지만, 사진은 여전히 찍고 있다.
내가 그림을 잘 그렸다면, 빈 캔버스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많았을 것이다.
나는 결국, 그 빈 캔버스를 되도록이면 빨리 채울 요량으로 사진을 찍었던 것이다.
덧없이 흘러갔던 시간과 에너지를 쏟은 것이 너무나 아까워서 사진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면 무언가 성과가 나올 것을 기대했다.
예전처럼 절박하지 못했고, 진심을 다하지는 못했다.
삶이 늘 그러하듯, 집중을 훼방놓듯 질곡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그래, 가만히 내버려 두지를 않지...
시간은 그렇게 잘 흘러갔다.
숟가락만 얹어 졸업을 하게 되었다. 열심히 수학을 했던 분들 사이에서 부끄러운 졸업이다.
어쨌든 십년 후의 내 모습도 지금처럼 사진을 찍고 있을 것 같다.
괜한 ego 만 살찌워서 꼰대짓이나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내가 본업으로 삼고 있는 분야에서도 항상 느끼지만, 프로의 세계는 냉혹하다.
살벌함을 느끼고, 그것을 극복하는 투쟁은 먹고사는 일 하나만으로 족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진으로 뭔가 성과를 내겠다는 의지는 일단 소거하기로 한다.
금번의 전시는 그저, 한줄의 이력으로 남게 될 것이다.
그것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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