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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 Sisyphus

One must imagine Sisyphus happy.

object : a branch

  • 2017.02.24 10:20
  • 感
글 작성자: quanj

이상문학상 작품집은 동경하던 '이상' 을 기리는 책이기에, 적어도 격년으로 사서 읽었던 것 같다.

2015년 이상문학상, 대상은 김숨의 '뿌리이야기' 로 돌아갔다.

근래에 읽었던 단편 중에 참 인상깊었던 글이었다.

‘뿌리 이야기’는 삶의 터전을 떠난 철거민, 입양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인생과 다른 곳으로 이식되는 나무의 고통을 병치시켜 현대인의 고통과 불안을 그려낸 작품이다. 



작가는 '이식할 나무' 라는 말을 들었을 때, 느낀 공포감이 작품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했다.

하루 아침에 제자리에서 내쫓겨 들린 '뿌리'를 오브제로 삼아 작업하던 남자친구의 이야기,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

산업화로 인한 현대인의 뿌리 뽑힘, 그리고 다른 곳으로의 이주가 초래하는 고통을 문학적 표현하였다.

이렇게 살려고 했던 것이 아닌데... 라는 근원을 향한 고민이 엿보였다.

나도 나무를 참 좋아한다.
그러나 어디서든 뿌리를 내리고, 일단 살고자 하는 내 잡초같은 성향때문인지 내가 주목하는 것은 뿌리가 아닌, 뿌리로부터 파생된 가지(branch)이다.
근원을 상징하는 뿌리는 외려 수동적으로 느껴지지만, 가지에서는 살고자하는 능동적인 삶의 방향성을 감지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방향성들이 그려낸 흔적 속에서 우리는 가지(branch)의 존재를 일깨우게 된다.
그래서 나는 가지(branch) 를 내 작업의 오브제(objet, object)로 삼기로 했다.
'뿌리이야기' 덕에 '가지'에 집중할수 있게 되었다.

...




늦은 겨울 휴가의 마지막 아침,
투명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펑펑 울어버리지도 않을 애매모호한 얼굴, 어둡고 바랜 색깔
그것이 아침의 얼굴이었다.
이런 날엔 저절로 사색에 젖고는 한다.
새소리에 취해 그저 의자에 한번 앉았을 뿐인데,
나무 한 그루가 말을 걸어온다.
그리고, 나무의 가지 하나하나가 내 삶의 족적인 것처럼
콩콩콩 또는 쿵쿵쿵 귀와 가슴을 아련히 흔들어댄다.
내가 걸어온 길, 내가 걸어갈 길, 또는 내가 가지 못한 길, 또는 가지 말아야 했던 길... 들이 모여
나무의 형태를 만들었다가, 이내 곧 산산히 흩어져 갔다.
나무는 여전히 내 앞에 있었고, 바랜 하늘도 그대로였다.

내가 걸어온 길은 내가 선택한 길이다.
선택은 책임을 동반해야 하며,
현재의 내 모습은 내 선택의 결과를 반영한다.
회상속에서, 실컷 얼굴이 붉어지는 부끄러운 모습과
샘이 마르도록 울고만 싶은 설픈 이야기와
몇번이고 다시 재생하고만 싶던 재미난 이야기들이 메아리친다.
그래, 지금 내 모습이 저 가지 어딘가에 있겠지. 있겠지...
때로는 행복에 취하고, 때로는 불행에 분해하며, 간혹 뒤를 돌아보며 갸우뚱거리는 어리버리한 모습도
저 가지 어딘가에 있겠지...

더불어,
굳건히 대지에 뿌리내리고 있는
나를 지탱해주는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과 사랑이 있기에, 내가 선택한 삶도 비로소 숨쉬고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도,
끊임없이 잊지 말아야겠다.



...2015년 2월 제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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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아주 오래전부터 '침묵'이라는 언어로 이야기를 해왔다.

그 오랜 시간동안 어떤 이야기를 해왔던 것일까...

사람이 이야기를 입으로 하듯, 나무의 이야기는 가지들이 해낸다.

종종 우리가 나무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나무가 바람을 만나서 속삭일 때, 나무가 빛을 만나서 그림자를 보여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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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branch)는 참 흔하고 익숙한 또는 그래서 고루할 수도 있는 소재이다.
익숙함은 망각을 불러온다.
너무나 당연해서 사색할 가치가 없다고 착각할 때도 더러 있다.
그러다 보면 감사해야할 이유 역시 차츰 잊게 된다.
그런 이유로 나는 주변의 익숙한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이려 노력한다.
나무의 이야기, branch 를 차근차근 기록하고 차곡차곡 쌓아나가려 한다.
언제가 온전한 하나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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